이 책을 처음 읽게 된건 니부어의 사회정의관을 배운 후 개인의 도덕성이 집단의 도덕성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에 너무나도 큰 흥미
를 느껴 이와 걸맞는 제목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적 형태의 집단은 그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경제적으로 절대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심지어 절반 정도의 만족과 희망을 주는 국가도 드물다. 오늘날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국가 공동체간 분쟁과 민중봉기, 테러와 학살, 기아와 사회 혼란의 참상들은 이성(理性)이 통제하는 도덕적 관점에서 과연 정당한 일일까?
개인에 대한 보편적 가치는 종교와 도덕, 이성과 양심에 의해 형성되며 선의지(善意志)로 표현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利他心)은 개인이 가진 양심과 이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이들의 도덕적 이성과 정의감은 그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까? 계층간, 민족간, 국가간 집단에서 이성을 바탕으로 한 정의감과 도덕적 양심에 의해 조화로운 평화를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묻고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국과 민족의 이기심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멀리는 일본 카미카제 특공대, 가깝게는 아랍 민족의 자살
폭탄 테러, 9.11참사, 미국의 이라크 침공, 수단의 다르푸르와 르완다 학살 등은 개인의 도덕적 관점과는 별개로 국가나 민족 집단 간의 이기적 욕망에 의해 희생당하는 참혹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개인의 도덕적 양심이 집단의 추악한 욕망에 매몰된다는 것을말이다.
평화는 오로지 힘에 의해 유지된다. 따라서 항상 불안정하며 정의롭지 못하다. 세계를 주도하는 초강대국들이 바로 그런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회는 언제나 불평등의 상태로 놓여 있다. 특권계급과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부르조아 계급은 소시민과 하층 민중으로 구성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봉기에 끊임없는 의구심과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계급간 불평등은 국가간 불평등을 낳기도한다. 세상은 평화스럽지도, 평등한 사회도 아니다. 그렇게 평등을 부르짖던 공산주의 국가가 계층간 불평등과 억압, 만성적인 폭력, 잔혹한 독재정치를 구사하는 것도 이 때문...
저자는 이 책에서 끈질긴 욕망과 이기주의, 불평등으로 점철된 계층간 구성원에 대한 분석을 통해 특권계급, 중산층, 하층민중들의 입장과 그들의 특징,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또한 민족간, 국가간 이기주의와 위선, 자기기만에 대해서도 그의 지적은 날카롭다. 그는 특히 공산주의의 이중적 위선에 대해 깊이 있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폭력을 악의지의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표현으로, 비폭력을 선의지의 당연한 표현으로 간주함으로써 폭력은 본질적으로 악의 범주에 속하고 비폭력은 본질적으로 선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가 상당부분 타당성이나 설득력을 지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폭력과 비폭력 간의 차이는 비록 의미 있는 구별이긴 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이런 구별을 할 때에는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비폭력을 주장했던 간디의 영국 면화 배격 운동은 결과적으로 맨체스터 지방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게끔 했으며, 전시 중 연합국의 독일 봉쇄로 인하여 독일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기아에 시달렸다.
폭력에 대해 전혀 색다른 정의를 내리는 앞의 문장은 나로서는 충격적이다. 물론 정의로운 폭력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사고의 전환을 단박에 이루기에는 조금의 심적 부담감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주된 결론은 방탕과 부패로 얼룩진 정의롭지 못한 집단에 대해 이성에 바탕한 정의를 강요하는데 있다. 그 의도된 강요, 심지어 폭력과 혁명을 통해서라도 점진적으로 이상사회에 접근해가는 것이 도덕적으로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주장은 경이로운 반전이다.
개인적 양심이란 이름하에 국가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종교적 심성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 계급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권력의지를 좌절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모범은 적대국의 개인들 사이에도 저항심을 퍼뜨리고 자신의 공동체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고서 얼마든지 분쟁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365p
계층간, 민족간, 국가간 불평등의 심화를 차단하고 비교적 가치 있는 정치권력을 윤리적, 사회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저자의 의도는 출간당시(1932년)의 세계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광기어린 이성과 정의의통제하에 인류는 놓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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