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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낙서

아파트 부동산에 대한 철학: 나는 어느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by 통합메일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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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집에 열광하는가. 어쩌면 정말 거주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적 해결책으로 가장 원하는 것을 가장 흔하게 만들면, 그러니까 누구나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있게 해준다면,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살게.. 적어도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게 해준다면 좋은 삶과 훌륭한 나라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그저 부정적인 것이 제거된 것에 불과하다. 단순히 부정적인 요소가 사라졌다고 해서 유토피아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삶과 세상은 부정으 제거를 넘어 긍정의 실현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방향지웠다.

 

'나는 어느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되었다.'는 말이 성립한다. 원함의 주체가 자신임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엇다. 좋은 집을 갖지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좋은 차를 타거나 좋은 옷을 입지 못해서 우리는 괴롭다. 어쩌면 그 앞에 붙은 '좋은'이라는 형용 자체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괴롭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어쩌면 정말 소중했을 그 무언가를 희생해가면서까지 그 무언가를 얻어내지만 노력과 희생에는 끝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과 희생은 다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나는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아니 뭐 어쩌면 연금 같은 게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모월모일모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화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소유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어떻게 되까? 우리 동네 마트는 어떻게 될까? 비싸고 흐귀한 것부터 동이 날 것이다. 평소에 아까워서 먹지 못한 술이나 고기 같은 것들부터 탐욕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가장 나중에 점령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하찮고 흔한 것일 것이다. 이 사회는 늘 우리에게 훈련시켜 왔따.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고, 이를 통해 종국에는 다른 이를 지배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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