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보살핌이다. 왕따 현상은 일진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옛날에는 노는 아이들이 한 아이를 왕따 시키려 해도 다른 아이들이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엔 일진 아이들이 주류로서 학급 아이들의 생활문화와 질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 아이를 왕따시키면 다른 아이들도 살아남기 위해, 즉 자신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동조할 수밖에 없다. 만약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알릴 경우 고자질했다고 찌질이로 놀림을 받는다. 일아이들 세계에서는 또래 집단에서 일어난 일을 어른들에게 말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 려과, 학교는 하나의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다. 일진 아이들은 귀족, 평범한 아이들은 평민,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왕따 또는 찐따라고 불리는 천민이라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이룬다. 그리고 이 사치의 법을 만드는 것은 일진이고 그들은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질서를 형성한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왜 친구들끼리 서로 싸우고 괴롭히냐고 물으면, "쟤는 친구 아닌데요."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봉건적 신분 논리가 교실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 세계의 이런 신분질서는 사실상 '봉건적 신분사회'로 회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반영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못살게 구는 것이 당연하고 신분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체계 순응적 특성이 강한 아이들 세계에서는 이런 논리가 더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학교 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이러한 교실 사회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중요하다. 피해 아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할 때 학폭문제에 대한 올바른 상황인식과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깨달아야 한다. 일진 아이들의 위험한 행동양식과 이에 동조하는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을 파악하는데 있어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사회의 법칙(집단역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른들에게 문화적으로 반발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우려가 있는 비공식적 청소년 집단에서 확인되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다.
아이들끼리 함께 모여 있으면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모험이행'이라 한다. 혼자 걸어가는 청소년은 별로 위험하지 않지만, 그들이 집단을 이루면 남을 공격할 힘을 갖게 되어 공간을 장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것이다. 교실에 혼자 있는 아이보다 파벌을 이룬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역시 모험이행이다. 집단 안에 있는 사람은 평소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도 이미 형성된 집단의 규범과 질서를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집단사고'라 한다. 이미 학급에서 서열의 상위에 있는 아이들 중심으로 어떤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면 아!들은 그에 맞서지 않고 순응한다. 더 나아가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하려 한다.
집단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현상이 소위 '책임감 분산'이다. 연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곤란에 처해 있을 때 그 옆에 한 사람만 있을 경우는 대다수가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두 명, 세 명, 네 명으로 늘어날 수록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하는 마음으로 책임감이 약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돕지 못하고 방관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살핌은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교사와 부모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인격적 관계를 형아고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교육당국, 정치 지도자들도 아이들을 보살펴줄 제도 마련에 소극적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침묵의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학폭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이들, 특히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느낌이나 생각, 자기 처지, 요구를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며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일진 아이들이 두려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초자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진 아이들이 주입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폭 문제를 해결하려면 피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주 작은 목소리 또는 침묵의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교사의 책임이 막중하다. 2011년 겨울에 자살한 대전의 한 여고생이 일진 아이들이 괴롭힌다고 상담을 청하자, 교사는 '이건 친구들끼리 문제니까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너희끼리 해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아픔과 절박한 목소리를 교사가 외면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보살핌 기능이 얼마나 결핍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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