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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

코로나와 도덕교육

by 통합메일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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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무수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이는 윤리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내용과 방법에서의 차이를 가져온다. 즉 무엇을 옳음으로 규정할 것인지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 변화가 생긴다. 문제는 과연 어느 정도의 변화일 것이냐 정도가 될 것이다. 현재 방법의 측면에서는 많은 논의와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따. 하지만 내용의 측면, 즉 새로운 시대에 윤리는 어떻게 새롭게 변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확연히 달라진 세상에 발맞춘 새로운 윤리의 공백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방법적인 측면에서의 논의는 대부분 수업을 비롯한 학교 학생활동으로 추구해 오던 것을 어떻게 하면 원격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오프라인에서의 교육활동을 있는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낼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화에 가속을 더 할 것인지 정도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도덕교육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과에 비해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특수성이 제기될만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다른 교과들도 마찬가지다. 지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대면을 통한 체험과 협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범교과적인 흐름이며 공통의 고민이다. 즉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도덕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나 그게 딱히 우리교과만의 일은 아니니 유난 떨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로 인한 윤리학적 변화를 연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일이다. 윤리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에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이론규범윤리와 응용규범윤리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만 하다. 응용규범윤리적 차원에서는 보건의료분야에서의 윤리적 딜레마를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신개발 과정에서의 인체실험 딜레마라든지 아니면 생산된 백신의 분배문제라든지 아니면 정보통신분야에서 감염자의 동선이나 신상정보공개와 관련된 비교적 소소한 문제들을 응용실천분야에서의 주된 고민의 주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론규범윤리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론 규범윤리에서의 변화까지 동반하기 위해서는 인간관의 변화가 선행해야 한다. 세계관의 변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코로나 시대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들은 대개 감염 및 방역과 관련해 이루어진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감염되어 슈퍼전파자가 되고, 더 나아가 위증함으로써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도출해 낼 수 있는 덕목/의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정직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딱히 변화가 있어보이진 않는다. 길리건이나 칸트의 윤리학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맥락은 사뭇 다르다. 길리건의경우에는 여성의 도덕적 본성에서 배려의 덕목을 뽑아냈다. 하지만 그렇다뵈까 왜 배려가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당화는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는 차라리 칸트의 입장에서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칸트의 경우 그의 윤리학은 지극히 형이상학적 근거 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형이하적 차원에서의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의 이론에 어떤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하더라도 그의 윤리이론은 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역시도 적절하지 않다. 효과가 전문한 것은 아니지만, 공허한 외침으로 그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코로나 시대의 윤리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칸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했다면 코로나 시대의 인간은 위험한 존재로 규정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험의 가능성이 매우 큰 존재다. 따라서 인간의 궁극목표는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위험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지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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